우리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많은 부모가 자기 아이는 토끼이길 바란다. 공부에서든 예체능 활동에서든 뭔가를 배운다면 그저 빨리 익히기만을 바란다는 뜻이다. 이런 부모는 자신 역시 시행착오를 거치며 서툴고 느리게 배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그저 아이의 학습 속도 향상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배움의 과정이 주는 다양한 의미와 재미를 무시하고 속도에만 집중하면 아이의 메타인지는 망가질 수 있다.
학습 시간은 짧은데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들을 흔히 '머리 좋은 아이'라 칭한다. 이 말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두뇌가 좋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하이들은 학습 속도가 느린 아니보다 정말 똑똑한 걸까? 이와 관련한 실험을 하나 살펴보자.
이 실험에서는 웨인주립대학교 Wayne State University의 의과대학교를 지원한 여학생 그룹과 남학생 그룹의 추천서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매우 흥미로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되었다. 첫째, 남학생들을 위한 추천서는 여학생을 위한 것보다 훨씬 길었다. 둘째, 남학생들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들은 여학생들을 묘사한 단어들과 다른 면을 보였다. 남학생들용 추천서에는 '업적 accomplishment' '성취 achievement' '총명함 intelligence' 등 '타고난 실력'과 관련된 단어들이 많은 데 반해 여학생들용 추천서에는 '근면한 hardworking' '철저한 thorough' '부지런한 diligent' '헌신적인 dedicated' '세심한 careful' 등 '노력'과 관련된 단어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결과는 추천서를 써준 교수들의 성별과 큰 상관이 없었다. 남자 교수가 작성한 것이든 여자 교수가 작성한 것이든 모든 추천서가 이러한 특징을 보였다는 뜻이다.
추천서에서 학생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게 하나 있다. 만약 당신이 의과대 교수로 위와 같은 내용의 추천서를 받았다면 '타고난 재능이 있는 똑똑한 학생' 과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 중 어느 쪽을 뽑겠는가?
일부 연구자들은 보편적인 사람들 대부분이 '여학생은 선천적으로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는 어쩌면 토끼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는 '실력'을 갖고 태어났다면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착각의 아닐까 싶다.
앞의 연구 결과를 본 후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추천서를 써주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작성한 학생들의 추천서를 살펴봤다. 나도 노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쓴느 편이었지만, 도입부에서는 해당 학생의 '노력'보다는 '타고난 특성'과 관련된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추천서를 읽는 이들이 '타고난 학생'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그런 단어들을 첫 단락에 쓴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속상한 것도 사실이다. 노력하는 거북이보다는 타고난 특성을 가진 토끼 같은 사람을 세상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말이다.
생각에도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토끼 같길 원한다. 하지만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어렵다. 메타인지는 생각에 브레이크를 달아줌과 동시에 생각의 과정을 점검하게 해준다. 메타인지를 사용하는 실생활의 예를 보자.
아이가 화를 낼 때 부모가 쓰는 방법 중 하나가 "곧바로 화를 내기보다는 하나부터 열까지 천천히 세어보는 게 어떨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가 '생각 없이 행동한다'고 믿기 때문에 무엇을 잘못했고 무었을 반성할 것인지 정리해보라는 의미다. '생각이 없다'는 말은 곧 자신의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 혹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추가 없다는 말과 같다. 부모들이 요구하는 '화가 났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보는 행위'는 자신의 감정(화)을 자각하는 행동이자 왜 자신이 화가 났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이 과정이 바로 메타인지다.
이러한 메타인지는 실생활뿐만 아니라 학습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뭐든 빨리 하는 것, 특별한 노력이나 과정을 필요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천재'의 학습 과정이 좋은 것이라 착각한다. 천재의 사전적 정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지만, 나는 이 단어에 정말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정말 천재라면 그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학습'의 필요를 느끼지 못함은 물론, 찬찬히 학습하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조차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일 것이다. 아이에게 이런 불행한 삶을 선물하고 싶은 부모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천재처럼 빨리 배워야 성공한다는 신념을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심어주는 부모가 많다. 우연히 무언가를 잘해낼 때 잘한다고 즉각적으로 그 능력을 칭찬하면, 아이는 자기가 빨리 학습에 성공해 부모의 기분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른 것을 새로 배울 때는 이전과 달리 학습 속도가 느리거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럴 경우 아이는 '어떡하지? 나는 천재가 아닌가봐. 엄마가 이 사실을 알고 실망하면 어쩌지?' 라며 불안해한다. 그 결과 배움의 과정을 포기하거나 자기 자신을 '바보'라 칭하며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루아침에 천재에서 바보가 되었다고 믿는 아이가 과연 무엇을 배우려 하겠는가.
메타인지를 키우는 최적의 조건
아이가 뭔가를 잘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이 정도는 해야지, 그럼. 누구 딸(아들)인데!"라며 칭찬하는 부모가 많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칭찬은 부모의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고, 아이의 성공과는 무관한 말이다. 부모가 생각 없이 내뱉는 이런 말들은 아이에게 '너는 천재구나'라는 말과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말을 듣는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아이는 '우리 엄마가(혹은 아빠가) 잘났기 때문에 나도 똑똑한 거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된 한 가지 실험을 살펴보자.
실험자는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본인의 능력에 대한 메타인지 판단을 요구했다. 그 결과 시험을 치르기 전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 시험 점수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낙관한 것이다. 학생들은 진짜 시험을 치른 후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학생들이 비슷한 시험을 치르는 경우에 처하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첫 번째 시험에 대한 판단 실수를 기반으로 메타인지 판단을 조절해나갔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재들은 메타인지 능력을 조절해야 하는 경험이 많지 않을 것이다. 천재가 시행착오를 겪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한 토끼 역시 경주에서 진 경험이 없지 않았을까? 때문에 천재는 자신의 메타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천재처럼 행동하는 아이들, 정답만 외우는 학습을 통해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못하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인지적인 면에서 실수와 실패는 학습이 서툴다는 징표지만 메타인지를 키우는 데는 좋은 환경이 된다. 실수와 실패가 없는 환경은 아이들에게 장기적으로더 큰 착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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