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리딩이 매일 적은 분량을 아주 자세히 읽음으로써 독서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라면 반복독서는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독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미적분을 창시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반복독서가 천재성을 낳는다고 주장하면서 유명해진 탓에 '라이프니츠 독서법'이라고도 불립니다만, 그 이전부터 널리 애용됐던 독서법입니다.
숱한 위인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터득할 때까지 읽고 또 읽는 반복독서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논어, 주용, 대학, 맹자를 아홉 번씩 읽은 율곡 이이, 주역을 이해하기 위해 가죽끈이 세 번 떨어질 때까지 읽었던 공자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죠. 아이들에게 적용해 보면 반복독서가 왜 천재를 만드는 독서법인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초등 5학년 아이 일곱 명이 함께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여자아이 둘에 남자아이 다섯이었는데 일곱 명 모두 유아 때부터 친구로 지낸 사이였습니다. 다들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선희라는 여자아이가 단연 뛰어났습니다. 평균이 100점에서 98점 사이를 오가는 성적에 남다른 승부욕을 가진, 여장부 같은 아이였죠. 자기 주관이 어찌나 뚜렷한지 속독을 하면 안 된다는 제 말에 빨리 읽는 게 왜 나쁘냐고,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되받아칠 정도였습니다. 일곱 명이 함께 기초 언어능력 평가를 보았는데, 선희는 42점으로 일곱 명 중 여섯 번째였습니다. 기초언어능력 평가 결과지를 받아본 날, 선희는 아이들 몰래 저를 찾아왔습니다.
"점수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선희는 앙다문 입에, 눈물이 그렇그렇한 눈빛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던 거죠. 저는 선희에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슬로리딩이었습니다. 독서 속도를 다섯 배 이상 늦추고,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으라고요. 장편 동화 한 권 읽는 데 최소 3시간은 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천천히 읽으려고 해봤는데 잘 안 돼요. 아무리 천천히 읽으려고 해도 1시간이면 다 읽게 돼요."
선희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웃음이 났습니다. 제 앞에서는 빨리 읽는 게 왜 나쁘냐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는 저 혼자 집에서 천천히 읽기를 연습해 봤던 겁니다. 사실 속독 습관이 있는 아이가 천천히 읽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미 몸에 밴 습관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일러준 방법이 반복독서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권 읽는 장편 동화를 세 번씩 반복해서 읽으라고 했습니다. 대신 한 번 읽을 때 최소한 1시간이 걸려야 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도 속도가 빨라져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었죠. 그렇게만 하면 6개월 안에 엄청나게 점수가 올라갈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독서의 효과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를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책 속에 담긴 논리와 정보,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파악해내면서 읽으면 단 한 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책 한 권을 통해 할 수 있는 사고의 극대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기본 줄거리조차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대충 읽으면 사고의 양이 아주 적게 발생하기 때문에 백 권, 천 권을 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석탄 매장량이 많은 탄광이라도 갱도를 파지 않으면 단 한 톨의 석탄도 캐낼 수 없듯이 겉핥기식 독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선희처럼 겉핥기식의 독서 습관이 몸에 밴 아이들은 '갱도를 파고 들어가는' 방법 자체를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갱도를 파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반복독서입니다. 특별한 지도 없이 반복독서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아니 거의 저절로 깊이 읽을 수 있게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세 번 반복독서를 강조합니다. 그걸 실제로 해내는 아이가 드물다는 게 문제지만요. 반복독서는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선희는 그걸 진짜로 해왔습니다. 매번 세 번씩, 그것도 6개월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말입니다. 책을 세 번 반복해서 읽었는지 아닌지는 수업을 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책을 세 번 읽은 아이는 책의 내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기 때문입니다. 줄거리는 물론이고 구체적인 대사까지 기억할 정도로 말입니다.
6개월이 지나 기초언어능력 평가를 다시 보기 전에 저는 아이들에게 선희가 깜짝 놀랄 점수를 받을 거라고 장담했습니다.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요. 선희는 87점,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언어능력을 기록했습니다. 단번에 45점이나 오른 것입니다.
"진짜 대단해!"
저는 호들갑스럽게 선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습니다. 제가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단번에 45점이 오른 것 자체가 아닙니다. 반복독서를 하면 누구나 그 정도 향상은 이룰 수 있습니다. 진짜 대단한 것은 6개월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같은 책을 세 번씩 읽어낸 꾸준함과 의지죠.
매주 한 권의 책을 세 번씩 6개월만 읽어도 초등 5학년 평균 이하 수준의 아이가 단번에 중등 3학년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만약 1년, 2년을 이렇게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같은 책을 거듭해서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내기만 한다면 그 결실은 상상 이상으로 크고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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