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 / 2024. 5. 29. 14:25

[초등독서학습] 필사 눈보다 손이 더 깊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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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가 필요한 이유

 

세종대왕은 약관의 나이에 조선 최고의 석학들을 논쟁으로 제압할 만큼 뛰어난 지적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학교 1학년 학생이 서울대나 카이스트의 석좌교수들을 지적능력으로 제압한 셈이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던 셈입니다.

 독서광이었던 세종대왕을 탈 인간급 인재로 만든 것은 100번 읽고 100번 베껴 쓴다는 백독백습이었습니다. 반복독서와 필사를 함께했던 거죠. 옛 위인 중에는 반복독서로 시작해 필사로 넘어간 사람이 많은데, 그 이유는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완전하게 집어넣는데 필사가 그만큼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천재적인 정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역사살 가장 위대한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 철학자 니체 등 필사로 뛰어난 인물이 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필사는 슬로리딩과 반복독서의 장점을 모두 가진 궁극의 독서법입니다. 그런 만큼 그 어떤 방법보다 효과도 뛰어나죠. 필사할 때는 기본자세가 무척 중요합니다. 깜지 쓰듯 기계적으로 쓰면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글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한다는 기분으로 쓰면 가장 확실합니다. 예를 들어, 구병모의 <위저도 베이커리>를 필사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청소년 소설은 제목처럼 마법의 빵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가 난다.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지금, 창비) 첫 문장

 

 

 아이는 책을 읽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제빵의 과정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장면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때는 '왜 하필 이 문장을 첫 문장으로 썼을까?' 하는 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첫인상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엄청 공을 들이죠. 자신에게 던진 이 질문에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릴 수 있습니다. '빵집을 둘러싼 이야기라는 걸 처음부터 제시하기 위해서다', '설탕의 달콤한 냄새로 독자를 매혹하기 위해서다' 정도만 추측해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주제의 측면에서 첫 문장을 해석해 보는 거죠. '이 이야기는 사람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설탕은 달콤하고 매혹적이지만, 중독성이 있고 많이 섭취하면 몸에 해롭다. 작가는 설탕 녹는 냄새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욕망의 특징을 제시하고 있는 거다!'라는 식으로요. 또 제목 혹은 소재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설탕이 녹는다는 것은 고체가 액체로 변신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면서 고체일 때는 없었던 달콤한 냄새를 내뿜죠. '변신하고 없던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확실히 마법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첫 문장은 주제를 드러냄과 동시에 마법적인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필사의 중요성

 

 첫 문장 하나로 할 수 있는 생각이 상당히 많죠. 한 문장 한 문장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필사를 하면 이렇듯 아주 세밀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가 난다.

그와 함께 다른 모든 것들이 감각의 뒤편에서 들고 일어난다. 방금 막 치대어 풍부한 글루텐을 함유한 중력분 밀가루 반죽의 탄력과, 프라이팬 위에 원을 그리며 녹는 노란 버터에서 일어나는 거품과, 커피에 얹은 부드럽고 촉촉한 생크림이 그려내는 물결무늬. 나는 그 가게 앞에 설 때마다 발효된 이스트의 활발한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었고, 그날의 타르트 위에 얹을 무화과잼 또는 살구잼의 풍미를 섬세하게 식별할 수 있었다.

 

<위저드 베이커리> 중에서

 

 필사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단어나 개념은 표시해둡니다. 예를 들어 '글루텐', '중력분', '이스트' 같은 단어, '제빵 과정', '버터와 생크림은 어떻게 만드는가?' 같은 개념들을 표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표시한 것들은 필사를 끝낸 후에 인터넷 백과사전을 활용해 알아봅니다. 문단 하나를 필사하고 나서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읽으면서 문단의 기능과 핵심 주제를 파악해 봅니다.

 두 번째 문단은 제빵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제빵 과정이 아니라 빵집에서 풍기는 냄새로부터 연상되는 제빵 과정입니다. 감각적이고 매혹적이죠. 두 번째 문단은 첫 번째 문단을 강화하면서 냄새의 실체가 '그 가게' 에서 나온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제대로 필사를 하면 책을 이루는 요소를 아주 깊은 차원에서 곱씹게 됩니다. 노트 한 페이지를 채우는 데 최소한 40~50분이 걸리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언어능력의 세부적인 근육, 사고력과 논리력, 언어 감각, 상징과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합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 문단과 문단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책 속에 등장하는 낯선 단어나 개념을 따로 파악함으로써 지식도 축적하게 됩니다. 이렇게 파악한 지식은 이야기 속의 요소이기 때문에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기억도 오래갑니다.

 그냥 눈으로 읽었을 때는 이런 것이 있다는 것 자체를 눈치조차 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권이라도 제대로 필사를 해본 아이는 단 한 줄의 글 속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숨어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을 하는 아이와 꿈에도 모르는 아이가 읽는 책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필사를 해본 아닌 책의 의미를 파악할 줄 압니다. 이런 아이는 책 한 권을 읽어도 언어능력이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제대로만 한다면 딱 한 권의 필사만으로 명문대 입시에 여유롭게 성공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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