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 / 2024. 6. 22. 09:15

[초등메타인지학습] 아이의 언어 능력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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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까지 거의 20여 년 동안 영어를 공부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다. 시험에 출제되는 문법 위주로만 공부한 결과다. 한국의 교육 문화는 회화를 통해 실전 영어를 익힐 수 있는 기회, '말하는 것을 학습할 기회'를 아이들에게 주지 않는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학교가 아닌 미드를 통해 회화를 배웠다'라고 말하겠는가. 언젠가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도 인터뷰에서 미국의 TV시트콤인 '프렌즈 Friends'를 보며 영어를 배웠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영상물만을 익혔을 확률이 높다. 단지 영상물을 보는 것만으로는 '회상 연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힘

 미국에서는 바나나를 '버내너'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부모 아래서 성장한 나는 어린이 집에 입학하기 전까지 '버네너'라는 발음을 들어보질 못했다. 당시 내 주변 사람 모두 '바나나'라고 발음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들은 바나나라고 발음하는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미국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안전하기 위해 나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 '영어를 못하는 아이'라고 인식되기까지 했다.

 한국인을 만나면 한국어 단어를 잘못 발음할까봐, 미국인을 만나면 영어 단어를 잘못 발음할까 봐 나는 점점 말수가 없는 아이가 됐다. 말 많기로 유명한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두려움이 어린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바나나라는 단어를 잊지 않을 수 있었으며 바나나, 배터리 등 영문을 그대로 사용하는 단어도 한국에서는 미국과 다른 발음으로 표현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당시 내가 말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안정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이 성인의 인지 능력은 아이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성인을 능가하는 인지 영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언어 영역이다. 이를 증명하는 실험을 하나 살펴보자.

 

[초등메타인지학습] 아이의 언어 능력은 무한하다

스스로 언어를 창조해낸 니카라과의 아이들

 중남미 국가인 니카라과에는 1970년대 이전까지 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없었다.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없었기에 청각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아이들은 읽기와 쓰기를 배우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77년 청각장애아들을 위한 기술학교가 설립됐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수화를 가르쳐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 스스로 손동작으로 규칙을 만들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수화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규칙과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이들의 대화는 엄청나게 많은 실패와 무수한 오해 속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끝내 자신들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어른의 가르침 없이 '니카라과 수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현상이 하나 더 일어난다. 자체적인 수화를 만든 아이들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수화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말은 곧 선배로부터 배운 언어를 어린아이들이 더 단순하고 효율적인 체계로 바꿔나갔다는 의미다. 

 니카라과 아이들은 필요에 따라 스스로 언어를 창조했고 이를 주도적으로 발전시켜나갔다. 시험이나 경쟁이 아닌 의사소통을 목표로 삼고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나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 아이들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없다. 의사소통이 아닌 성적을 목표로 하는 공부라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다.

 초등학생 때 미국에서 나는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실제로도 주변에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는 똑똑한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민자 부모들은 무서울 정도로 아이의 영어 공부에 집착한다. 자신의 아이만큼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여 주류 사회에 속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들이 언어에 대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단어의 양'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단어를 많이 알면 그만큼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를 통째로 암기하면 어떤 종류의 시험도 잘 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앞서 가변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단어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변할 수 있다. 언어를 잘하는 방법은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 게 아니라 그 단어가 언제 어떻게 쓰이는지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다.

 아이가 책을 읽으면 그 단어가 어떤 문맥에서 쓰이는지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말하는 연습을 시키는 게 좋다. 책을 읽고 말하는 학습은 단순히 단어를 암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암기한 단어의 양으로 아이를 평가하면 아이는 자신이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기 쉽고, 이 착각은 허위로 아이의 자신감을 상승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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