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꿈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엄마가 될지 어떤 선생님이 될지는 오로지 내가 결정할 몫이었고 그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일 고민 중이다. '엄마'라는 전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배우는 것이 참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비교적 행운아라 할 수 있다. 대학교에 '엄마'라는 전공은 없었지만 대신 심리학을 전공하며 많은 연구를 접할 수 있었고,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내 아이들의 발달 과정을 유심히 지켜볼 수 있었다. 이 과정은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해 주었다.
특히 메타인지를 공부하면서 나는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중 하나는 아이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학습 방법을 제시해도 우리 아이와 맞지 않는 방법인 경우가 많았다.
아이를 양육할 때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이의 생각과 성향을 무시하고 다수의 부모가 선택한 길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안전하게 보이는 그 길이 정말 좋은 길일까? '선택의 길'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게 떠오르는 한 가지 실험이 있다.
실험자는 피험자를 '초보자 집단'과 '전문가 집단'으로 분리한 뒤 두 집단 모두에게 물리 문제를 출제했다. 단, 본격적인 문제 풀이에 앞서 양쪽 집단 모두에게 정답의 범주화를 요구했다. 초보자든 전문가든 범주화를 하려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실험 결과, 양쪽 집단 모두 비슷한 범주화를 도출했지만 범주화하는 시간에서 차이를 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문가 집단이 초보자 집단보다 범주화에 조금 더 긴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정답을 찾는 과정 혹은 방법 때문이다. 초보자들은 대게 정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낯설고 복잡하고 어려운 다른 길을 찾기보다는 익숙하고 쉬운 '하나의 길'을 선택한 뒤 목표를 향해 빠르게 뛰어간다.
반면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이것저것 비교한다. 비교를 통해 잘못된 길, 오류가 생기는 길, 목적지에서 벗어난 길을 하나씩 제외해 나가는 것이다. 정답도 하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 역시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빨리 목표 지점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아이의 적성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
선택의 길을 우리의 교육과 비교해 보자. 한국의 부모는 자녀가 하루빨리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유전공학부(적성 탐색을 위해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해서 어느 정도의 시기를 보낸 뒤 일정 시점에 원하는 전공을 택하는 제도)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미리 전공을 골라야 하고, 특목고 진학을 위해 중학교 때부터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다고 정보와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아이가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수도 없다. 이에 부모가 아이 대신 진로를 결정하거나 아이의 결정에 깊이 개입하여 양쪽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목적지가 어디든, 혹은 무엇이든 '도착은 곧 성공'이라는 착각을 나 역시 해본 바 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길이 단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아이가 예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애초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정작 자신이 도착한 목적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과 노력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이미 너무 많은 투자를 한 아이에게 다른 목표를 설정하라고 할 것인가? 뒤늦게 부모가 다른 길을 제시하더라도 아이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니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질 것 같고, 초등학생부터 대입까지 12년을 달려온 노력이 아까워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할 것이다. 내 아이가 그와 같은 길을 가길 바라는가?
아이의 적성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몰입하고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지 등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문제는 아이의 성적과 부모의 불안감이다. 공부 외의 다 향한 경험이 아이의 성적을 올려주진 않기 때문이다.
성취동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당시 교포인 세린이는 영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말이 많지 않은 조용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자신감도 낮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을 만났는데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업 시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편지의 답장을 받아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고 한다. 세린이는 한국에 있는 친척 언니에게 편지를 썼고 한글로 된 답장을 받았다 한다. 선생님도 평소 조용한 세린이의 성격을 아는지라, 집에서 엄마의 도움을 받아 편지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한 뒤 친구들 앞에서 읽어보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선생님에게 "제가 번역할 수 있어요"라고 ㅇ야기하더니 친구들 앞에서 한국말로 한 줄, 영어로 한 줄 번갈아 번역하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대체적으로 교실에서 영어 외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다소 부끄러워했는데 그 일 이후로 러시아어나 중국어 등 자기 모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친구들이 생겼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과거 주변 사람의 불안에 동조되어 내가 아이를 한 길로 몰아넣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도 모르게 내 불안을 아이에게 전달시켰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싫지만 분명 지금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공부 말고 너무도 많은 길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성취를 경험한 아아는 결국 학습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낸다. 좋은 성취가 좋은 머리를 이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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