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이라고 하면 어떤 광경이 떠오르는가? 아마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가 상상될 것이다. 분명 강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메타인지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토론 같은 쌍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강의는 오히려 학생들의 메타인지를 착각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아무 말 없이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아이들은 어느 순간 '내용이 잘 이해된다' '수업이 너무 쉽다'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알아야 할 내용을 선생님이 미리 다 말해주니 '이해가 잘된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메타인지 관점에서는 이를 '과신'이라고 본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토론할 기회가 많지 않고 시험 성적만 잘 받으면 되기 때문에 과신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빠른 이해가 학생들 사이에서 자랑거리가 되는 것도 안다. 반갑지 않겠지만 과신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다음의 실험을 보자.
실험자는 학생들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영상을 통해 선생님의 수업을 받게 했다. 다만 A 그룹에게는 유창한 언변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의 수업 영상을, B 그룹에게는 수업 내내 노트를 참고하고 말을 더듬거리며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보여주었다. 영상이 끝난 후 실험자는 학생들에게 수업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선생님이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등에 대한 시험을 치렀다.
시험 결과 두 그룹의 성적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두 그룸의 학생 모두 수업 내용을 비슷하게 기억해 냈다. 하지만 메타인지 판단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정보 전달을 능숙하게 하는 선생님에게 배운 A 그룹 학생들은 자신들이 잘 배웠다고 평가한 반면 말을 더듬는 선생님에게서 배운 B 그룹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이 서툴러서 자신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평한 것이다.
이 실험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아이들은 선생님이 유창한 언변으로 수업을 하면 자신들이 더 잘 배우고 있다는 위험한 착각에 빠진다. 너무 편하게 답을 제시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 아이들은 컨트롤과 학습 방식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학습한 정보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강의하는 선생님도 착각에 빠지기 쉽다. 강의 위주의 수업은 아이들의 이해도와 상관없이 선생님 주도로 진행된다. 질문을 하는 아이도 많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은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런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에게 수업 내용을 복기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말을 하는 맥락(선생님과 수업을 듣기만 하는 맥락(학생)이 서로 다르고, 학습 내용에 대한 전이-적합 처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다. 토론이나 발표를 통해 아이가 스스로 수업 내용을 설명해 보는 과정이 없는 수업, 장기 기억을 위한 맥락에서의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 수업은 이처럼 빈번하게 메타인지 면에서 착각을 일으킨다.
사실 한국에서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이 토론 혹은 그와 비슷한 학습 방법을 거치지 않고도 많은 성과를 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의 이유가 객관식 위주의 시험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 입장에서 객관식 시험은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없는 시험 형태다. 정답만 외우거나 근사치에 가까운 답만 고르면 되는 것이다.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끄는 것을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새로 배우는 지식을 장기 기억에 저장하려면 학생은 반드시 수업 내용을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학습 목표가 단지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이라면 단기 기억 향상을 위한 학습이어도 상관없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장기 기억을 위한 과정보단 단기 기억을 위한 과정이 더 편할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장기 기억력을 높이는 것에 있다면 다양한 맥락에서 토론하고 설명하는 경험, 즉 학습한 정보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벼락치기 VS 분산 학습
학습에서 장기 기억이 목표일 경우, 단기 기억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은 그리 좋은 경험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메타인지 면에서 큰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아이가 짧은 시간에 쉬지 않고 많은 것을 암기하는 일명 '벼락치기'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그 순간 부모는 '우리 아이가 정말 노력하더니 그만큼 좋은 성적을 거뒀구나'라는 착각에, 아이는 '나는 정말 공부 잘하는 아이구나'라는 착각에 빠진다. 벼락치기를 통해 좋은 성적을 받으면 아이는 밤을 새우며 공부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이러한 과신은 중간고사를 앞둔 아이에게 '밤을 새워 공부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다.
그런데 벼락치기도 항상 효과를 볼 수 있는 공부 방법이 아니다. 그 이유 역시 '기억'에 있다. 밤을 새며 공부하던 아이들도 동이 틀 무렵 컨디션을 위해 한두 시간쯤 눈을 붙인다. 짧은 단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는 과연 자신이 공부했던 내용을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밤을 새우며 공부한 시간과 시험 보는 시간 사이의 간격이 길지 않으니 단기 기억 속에서 문제의 답을 불러오기 쉬울까?
안타깝께도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단기 기억에서 학습한 내용을 불러오는 연습을 해보지 못한 탓에 아이들은 자신이 공부했던 내용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 실제로 나는 시험을 치른 학생들 중 몇몇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어떻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수 있는 거지? 오늘 새벽에는 분명 다 아는 것 같았는데"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앞서 설명했던 두 가지 착각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단기 기억을 위한 공부 과정에서 '나는 학습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라고 느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니 굳이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으로 이해하며 공부할 필요가 없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전이-적합 처리 과정은 학습에서 매우 중요하다. 단기 기억을 통해 좋은 성과를 거둔 아이라 해도 맥락이 바뀐 장기 기억에서의 성과까지 좋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벼락치기와 반대되는 학습 방식이 바로 '분산 학습'이다. 분산 학습은 짧은 내용을 긴 시간 동안 분할하여 꾸준히 학습하는 방식이다. 한 학기 동안 매일매일 몇 십 분씩 꾸준하게 공부하는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통합적 사고를 기르는 학습 방식은 따로 있다
초등학생이 수학을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아이는 이제 막 덧셈을 배웠다. 숙제와 문제집을 통해 문제 풀이 속도가 빨라지고 정답률도 점차 높아지면 아이는 자신의 수학 실력을 과신하게 된다. 어느덧 기계적으로 단순 암산까지 가능해지고 나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덧셈이 쉽다고 느낀다.
이때 뺄셈의 개념을 가르치면 아이는 덧셈을 배우기 전보다는 전문적인 수준, 즉 풀이 속도가 빠른 수준이 되었지 때문에 약간의 사후과잉확신편향을 갖는다. 덧셈을 배울 때의 경험으로 '빠르게 문제를 풀고 실수하지 않는 것이 전반적인 학습에 좋다'는 메타인지 판단을 하는 것이다. 곱셈이나 나눗셈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의 진정한 메타인지 능력은 단순 계산이 아닌 문제 해결력, 즉 문제 해결에 필요한 방법을 생각해 내는 힘으로 판단돼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다섯 명의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는 피자를 시켜 친구들과 나눠 먹으려 한다. 한 판의 피자는 보통 여덟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 그 자리에 모인 아이들이 각자 두 조각의 피자를 먹고 싶어 한다면 총 몇 판의 피자를 시켜야 할까?
이는 단순한 덧셈과 나눗셈, 즉 기계적 작업이 아닌 이해와 응용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 의미 없이 기계적으로 사칙연산을 학습해 온 아이들은 이 문제의 풀이 방법을 모른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통합적 사고를 기르는 학습 방식을 연구했다. '통합적 사고 학습'은 분산 학습과 비슷한 개념인데, 무작정 공식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여러 가지 공식을 적용시켜 아이의 이해와 응용력을 높여준다.
그런던 중 한 연구진은 대부분의 수학 교과서가 '벼락치기가 가능한 학습'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수학 교과서는 '단원'을 통해 각각 독립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 단원에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도 해당 단원에서 배운 수학적 개념만 사용하면 충분히 문제를 풀 수 있는 구조다.
연구구자들은 여러 수학적 개념이 혼합된 방식의 '통합 문제'가 정말 학습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벼락치기가 가능한 문제와 통합 수학 문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은 벼락치기형 문제보다는 통합형 수학 문제를 더 어렵게 느끼지만, 후자를 풀었을 때 장기 학습의 결과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적 사고 학습 방식은 단순한 기계식 학습보다 많은 실패를 요구한다. 그리고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현실적으로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 과정을 선호하는 부모와 아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면 메타인지 근육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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