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를 연구한 후 만난 수많은 학부모들은 한결같이 '메타인지를 배우면 아이의 성적이 급상승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타인지를 키우는 목적은 성적 향상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토끼가 아닌 거북이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너무도 유명한 월터 미셸 Walter Mischel의 마시멜로 실험을 살펴보자. 실험자는 3~4세 연령의 아이들을 각자 빈방에' 두고 마시멜로가 하나 놓인 접시와 두 개 놓인 접시를 동시에 보여준다. 아이 앞에 마시멜로 한 개가 놓인 접시를 남겨둔 실험자는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면 15분 후에 돌아와 두 개의 마시멜로를 선물로 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방을 나간다. 이때 아이들은 두 가지 행동을 보인다. 마시멜로를 바로 입에 넣어버리거나, 실험자가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거나.
전자에 속한 아이들의 행동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게 없는가? 혹 토끼처럼 빠르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실험자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마시멜로를 입안에 넣어버리는 아이들은 메타인지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유혹을 참을 필요가 없으니 이를 이겨 재기 위한 방법도 찾지 않는다. 생각 자체가 필요 없는 세미다.
반면 후자에 속한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지금 당장 입에 넣고 싶은 욕구를 멈추기 위해 메타인지를 쓰기 시작한다. 실험 영상ㅇ르 보면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천장을 살펴보거나, 구구단을 외우는 식으로 나름의 노력을 한다.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면 먹고 싶은 욕망에 질 것임을 알기에(컨트롤에 실패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에)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유혹에서 멀어지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낸 것이다.
참고로 어린 시절 우리가 메타인지로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멈춤stop'이다. 자기 조절력이 없는 아이들은 맛있는 것을 보면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입에 가져다 넣는다. 이때 옆에서 부모는 '안 돼'라는 말로 아이의 컨트롤 능력을 길러준다. 친구를 때리고 싶은 욕구, 장난감을 빼앗고 싶은 욕구, 맛있는 것을 입에 넣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멈추는지 배워나가는 과정도 이와 같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시멜로 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메타인지를 잘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 자기 자신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을까? 다음 실험에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빠른 공부에서 느린 공부로
실험자는 생물학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들에게 총 열두 개의 생물학 단어가 적힌 카드를 제시했다. '미토콘드리아 : 진핵세포 속에 들어있는 소시지 모양의 알갱이로 세포의 발전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작은 기간'이란 식으로 단어의 의미가지 포함된 다소 복잡한 구조의 카드였다.
잠시 후 실험자는 학생들에게 카드에 적힌 단어를 제대로 암기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판단하게 했다. 학생들은 '조금' '많이' '더 이상 공부할 필요 없음'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의 상태를 판단했다. 실험자는 학생들이 판단한 것보다 더 많은 공부 시간을 주었지만 학생들은 실험자에게 '이 공부를 위해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은 필요 없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는 학생들의 큰 착각이었다. 실험자는 학생들이 판단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었지만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학생들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 시간이 남았음에도 학습을 일찍 끝내버린 것이다. 결국 학생들은 좋지 않은 시험 결과를 얻었다. 학습을 빨리 끝내는 것에 집중한 결과다.
만약 같은 실험에서 학생들의 메타인지 판단을 도와준다면 그들은 학습 방향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을까? 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학습을 더 느리게 만드는 실험을 진행했다.
같은 실험 방법으로 진행된 후속 연구에서 나는 한 단계 과정을 추가했다. '이 공부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해 학생들이 대답하기 전, 간단한 메타인지 판단을 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시험에 이 단어가 나왔을 때 정답을 맞힐 자신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문항을 제시하고 '자신감이 높으면 3점' '자신감이 없으면 1점'으로 응답하도록 했다. 학생들 스스로 메타인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학생들은 모니터링을 통해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다'라고 판단한 단어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라고 판단한 단어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이 실험 결과를 확장하면 아이들은 메타인지를 통해 자신이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언어가 없는 동물도 메타인지를 사용한다
메타인지 연구를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언어 없이 메타인지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메타인지는 언어 없이도 가능한 능력이라는 게 증명됐다. 이 결론을 통해 다른 여러 의문점이 제시됐는데, 그중 하나가 '언어가 없는 동물도 메타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가?' 였다.
하지만 의사표현의 도구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동물을 대상으로 메타인지를 정확하게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을 통해 그들의 메타인지 사용 여부를 추론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메타인지는 어떻게 행동으로 드러날까/ 우리가 어떤 사실을 모를 때는 언제이며 이때 나타나는 행동은 무엇일까?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이 모니터링과 컨트롤을 보여주는 게 가능할까?' 이러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중 말이 서툰 아이들의 대화에서 얻은 힌트로 내가 진행한 실험이 하나 있다.
이 실험은 재미있게도 "내 말이 맞아! 틀렸으면 100만 원 준다!"라고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후 설계됐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아이들이 자신감의 표현으로 '내기'를 하는 것을 보니 동물들에게도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 즉 '내기'를 하게 만들면 메타인지를 측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원숭이들에게 내기를 유도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동물도 메타인지를 활용한다
이 실험을 위해선 무엇보다 원숭이들이 '인지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와 '메타인지 내기를 위한 문제'가 마련되어야 했다. 인지적인 문제는 가장 간단한 지각적인 질문으로 시작했다. 예를 들면 세시 된 선들 중 길이가 가장 긴 선은 어느 것인지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 인지 질문에 대답을 한 원숭이에게는 내기를 권장했는데, '많은 돈'과 '작은 돈'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정답의 자신감을 나타내도록 했다.
실험은 꽤 오래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원숭이들은 자신의 대답이 정답일 것 같으면 '많은 돈'을, 오답일 것 같으면 '적은 돈'을 걸었다. 사람과 유사하게 원숭이도 자신이 있을 때만 내기를 했고 자신이 없을 때, 즉 자신이 모르거나 틀릴 가능성이 높을 때는 내기를 피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원숭이에게도 메타인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숭이들이 왜 메타인지 능력(모니터링)을 가자고 있느냐다. 모른다는 판단을 할 수 있으면 '안다고 착각'하는 간극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원숭이들도 자신이 모르는 것을 판별하고 이를 통해 더 배울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스스로 '나는 이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나름 원숭이도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된 통제 실험을 보자.
이 실험에서 원숭이들은 다섯 개의 그림을 정해진 순서대로 누르는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마친 뒤 실험자는 원숭이들에게 그림 목차를 제시한다. 목차에는 원숭이들이 앞서 훈련받은 순서(정해진 다섯 개의 그림 순서)도 있었지만, 그림의 나열 순서가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의 목차도 있었다. 이때 실험자는 원숭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힌트를 주세요'라는 버튼을 누르도록 훈련시켰다. 그 결과 원숭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순서의 그림이 등장하면 힌트를 받지 않고 스스로 해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림이 나타나면 도움 버튼을 더 많이 클릭하는 행동을 보였다. 나는 이 실험 결과를 보며 원숭이들이 모니터링을 통해 '답을 모른다'라고 인정하고 '모르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는 컨트롤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원숭이들도 기본적인 메타인지를 사용한다는 이 실험 결과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인간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메타인지를 사용할 수 있음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아닌 사람을 통해 진행했던 메타인지 실험을 보자.
실험자는 피험자들에게 상식 퀴즈를 제출하고 정답을 맞히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자는 피험자들을 임의로 두 개 집단으로 나누었는데 A 집단에게는 '답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답을 바로 말할 수 있을 때' 버튼을 누를 것을, B 집단에게는 '답을 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곧바로 버튼을 누를 것을 요구했다.
실험 결과 답을 안다고 생각한 B 집단의 버튼 누르는 속도가 빨랐다. 이는 연구자들에게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메타인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메타인지는 꼭 말로만 표현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아니며 말하는 능력보다 근본적인 어떤 능력이 있을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단 이 실험 결과가 아니더라도 나는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생각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을 능가하는 근본적인 그 무엇을 갖고 있지만, 그저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인 건 아닐까?
원숭이 관련 실험에 대한 보충 설명
한 심리학 실험에서 에빙하우스 Ebbinghaus 와 래슐리 Lashley라는 이름을 가진 히말라야 원숭이들 rhesus macaque에게 모니터링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모니터링 테스트에서는 원숭이들에게 두 가지 대답을 요구했다. 하나는 '인지', 즉 학습한 내용을 기억하는지와 관련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메타인지 판다', 즉 그 기억에 대해 어느 정도로 자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원숭이들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1번부터 6번까지 여섯 개의 그림을 하나씩 차례로 본 뒤 그 그림에 대한 기억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에서는 여섯 가지 그림 중 하나가 이전엔 제시되지 않았던 새로운 그림 여덟 개와 섞여서 등장했고, 원순이들은 좀 전에 보았던 여섯 개의 그림 중 재차 등장한 하나를 찾아서 그것을 눌러야 했다. 다시 말해 앞서 제시됐던 그림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게 하는 테스트였던 것이다.
원숭이들은 대개 이런 종류의 기억 테스트를 잘 해낸다. 하지만 보통은 정답을 맞히면 보상을 받고 오답을 고르면 페널티를 받는데, 이 실험의 경우에는 원숭이가 택한 답에 대한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때문에 원숭이들은 그림을 선택한 뒤 자신의 기억력이 얼마나 확실한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했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판단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원숭이들은 자신의 모니터링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할까?
인간의 언어를 쓰지 않는 원숭이들은 내기를 하는 방법을 배웠다. 자기가 기억했다고 생각하는 답에 '많은 돈'을 걸거나 '적은 돈'을 걸 수 있도록 말이다. 많은 돈을 걸 경우 자신의 기억이 맞으면 3 토큰을 받고, 틀리면 3 토큰을 잃는 데 반해 적은 돈을 걸 때는 무조건 토큰 하나를 받았다.
실험 결과, 원숭이들에게선 모니터링이 제대로 기능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자신의 기억이 틀렸을 때보다 맞았을 때 많은 돈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시된 그림에 상관없이 원숭이들은 자기 기억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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