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 첫 번째 수업마다 내가 학생들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여러분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학생들은 머뭇거리며 행복이나 성공 같은 추상적 단어들을 먼저 이야기한다. 어색한 시간이 조금 지나면 건강이나 좋아하는 직업, 충분한 돈, 사랑하는 사람, 좋은 친구들 등 조금은 구체적인 대답이 등장한다. 이쯤에서 나는 그들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목표에 다다르는 길은 무엇일까요?"\
강의실에는 짧은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며 마지막 질문을 이어나간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앞의 질문에는 곧잘 대답했던 학생들도 이 질문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입을 다문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몇몇 학생들에게서 대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지 그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하나도 없다.
알 수 없는 머나먼 미래를 추측하거나 추상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이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모른다. 다만 대학에서 심리학을 배우고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은 '인생은 결국 문제 풀이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문제부터 숨이 턱 막히는 커다란 문제들까지, 인생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끊임없이 선물한다.\
아직 두 발로 서지 못하는 아기가 있다고 치자. 한없이 뒹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아기의 눈에 장난감이 들어온다. 문제는 장난감이 아기의 손이 닿지 않는 테이블 위에 있다는 것. 이때 아기에게는 테이블까지 도착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기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목청껏 소리 높여 울어 주변 어른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제 힘으로 장난감을 쟁취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창의적인 생각이다. 자신의 근처에 놓여 있는 긴 막대기 등을 이용해 장난감을 떨어뜨려보겠다는 식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어른에게는 이런 생각도 단순한 사고에 지나지 않지만 아기에게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어른의 도움을 받는 것에 비해 아기의 힘과 시간도 배로 들고 실패할 확률도 높다. 그러나 장난감을 손에 쥐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아이의 문제 해결력과 창의성을 키워준다. 이런 아기들은 엄마가 바로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는 아이와 생각의 성장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답을 모르겠어요. 정답이 뭐예요?
실제 수업을 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난이도가 조금 높은 문제를 내주었다. 풀이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어려운 문제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교수님, 답을 모르곘어요. 정답이 뭐예요?"
"생각을 더 해봐. 급하게 풀려고 하지 않아도 돼."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 중 몇몇이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해당 문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는 답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이 전혀 중요치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인 것이다.
미국에서 메타인지와 관련된 연구들을 살펴보면, 초등학생부터 대부분 모니터링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중학교 시절까지 컨트롤이 취약할 뿐이다. 이를 증명하듯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족한 부분을 공부해야 하는데 오히려 학습을 덜 해도 되는 부분에 집중한다. 비슷한 패턴 같은 형태의 문제를 반복하면 정답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착각이 컨트롤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아는 것만 계속 공부하면 정작 중요한 '모르는 부분'의 학습시간은 턱없이 부족해진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에 비해 성적이 낮은 아이들이라면 컨트롤 능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어느 과목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많이 빼앗겼는지 체계적 공부를 위해선 시간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등을 점검하면 효율적인 학습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 네트워크
메타인지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창의성도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결코 많은 사람이 선택한 길, 안전한 길, 검증된 길로 가지 않는다.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강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제시할 때가 많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창의성이 높기를 바란다. 하지만 창의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는지는 알려하지 않는다. 창의성 또한 IQ처럼 타고난 능력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창의성이라고 정의한다면,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의 창의성을 죽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창의성은 아이들의 노력하는 과정, 어려운 문제를 대하는 태도, 실패에 따른 부정적 감정을 견디는 능력과도 관련이 높다. 어떤 연구자는 창의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균형 능력'을 꼽을 정도다. 여기서 균형 능력이란 실력과 문제의 난이도 간 균형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주어진 문제가 자신의 능력보다 쉬우면 쉽게 지루해한다. 반대로 자신의 수준을 능가하는 어려운 문제를 접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학습 속도 또한 더뎌진다. 때문에 아이의 창의성을 키우려면(혹은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아이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현재 아이의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하는 게 좋다.
더불어 많은 전문가가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창의성을 높이는 중요한 벙법'이라고 말한다. 이를 증명한 실험을 보자.
실험자는 아이들 앞에 물건을 몇 개 놓아주고 그것들을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하느냐를 기준으로 창의성을 측정했다. 가령 아이에게 벽돌을 하나 주고 아이가 그것을 다양하게 사용할수록 창의성이 높다고 보는 식이다. 실험자들은 뇌의 어떤 부분이 창의성과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읻르이 놀이에 집중하는 동안 fMRI로 뇌 활성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아이들이 물체의 용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기 위한 생각을 할 때, 메타인지와 관련된 뇌 부분이 활성화됨을 알 수 있었다. 문제를 풀 때나 자기 생각에 집중할 때 뇌의 비슷한 부분들이 자극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창의성이나 창조적 사고가 메타인지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려준다.
덧붙여 연구자들은 창의성을 억누르지 않으려면 '자기 거울'을 보는 시간이 필요하며, 자기 거울에 집중하면 머릿속에 있는 기억과 감정을 쉽게 꺼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기본 모드default mode'혹은 '상상력 네트워크 imaginaton network'라 칭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연구자가 덧붙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뇌의 여러 영역을 사용하는 상상력 네트워크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생각하며 다른 시각과 시나리오를 볼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이야기를 이해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며 경험을 통해 의미를 창조해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일부러 마련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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