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 / 2024. 6. 26. 09:11

[초등메타인지학습] 자발적 학습의 비밀, 동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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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보상 prize이 있다. 보상이라 하면 대개 물질적인 것을 생각하지만 정서적 보상도 매우 중요하다. 내가 딸아이의 글씨에 반응했던 피드백도 일종의 보상이었다.

 상이란 보이지 않는 노력은 고려하지 않고 성과로 순위를 매기는 것으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때' 주는 선물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에 다니며 메타인지를 연구할 당시 나는 뉴욕에 있는 초등학생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그때 만난 아이 중 한 명이 "선생님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왔어요? 대단하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너도 열심히 공부 하면 그 학교에 갈 수 있어'라고  대답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6학년 아이 중 한 명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나 같은 아이는 불가능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의 가정은 책 한 권을 마음 놓고 살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지금처럼 학교 도서관도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책을 빌릴 수 없는 아이는 매일 아침 동생에게 시리얼 박스에 적힌 글을 읽어준다고 했다. 책 대신 시리얼 상자로 동생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는 초등학생 오빠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정말이지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이 아이의 노력은 언제쯤 인정받을 수 있을까?

 

[초등메타인지학습] 자발적 학습의 비밀, 동기부여

외적 동기 vs. 내적 동기

 인생에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아이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한 연구자는 2000년도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학비 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상'을 줘서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 주려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취지는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무조건적인 보상이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순간의 동기부여는 줄 수 있지만 그 효과가 사라지면 이전보다 안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을 타기 위한 공부, 즉 외부 보상을 목표로 학습 욕구를 가지는 외적 동기external motivation는 아이가 자발적인 호기심으로 지적욕구를 충족하려는 내적 동기 intrinsic motivation를 약화시키기 마련이다.

 외적 동기부여를 동력으로 삼는 아이들은 이러한 보상이 사라지면 모든 동력을 잃는다. 일례로 대입을 목표로 12년을 달려온 아이들이 원하던 대학에 붙고 나면 학습에 대한 흥미를 급격하게 잃는 경우가 많다. 전공을 위한 공부, 취직을 위한 공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는 이제 시작이지만 음주와 가무에 빠져 학습은 뒷전인 식읻. 그렇게 원하던 대학에 들어왔지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아이들의 방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학습에 있어 한국 학생들은 경쟁에서 앞서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외적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경우 아이들은 자신이 왜 공부를 하는지, 무엇을 배우는지, 무엇이 재미있는지 등에 대한 판단할 필요가 없다. 그 누구보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메타인지는 전혀 활용하지 않는 이상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내가 아닌 상대를 탓하는 이유

 실수나 실패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쉽지 않은 일이다. 경주에서 진 토끼도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단순ㅣ 경주에서 패배했다는 사실보다는 '거북이보다 훨씬 빠르니 당연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자신의 메타인지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토끼처럼 실패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만 그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며 계속 다른 핑계를 찾는다.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즉 상대의 행동을 판단할 때 외부적 요소보다 내부적 요소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 때문이다. 일례로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경우 사람들은 제일 먼저 주변을 살핀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으면 훌훌 털고 일어서지만 누군가 있다면 "길에 왜 돌이 튀어나와 있어?"라며 상대가 들으라는 듯 소리친다. 자기가 잘못해서 넘어진 게 아니라 튀어나온 돌이 문제였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른 상황도 생각해보자. 길은 건너는 보행자 앞으로 갑자기 자동차가 끼어들었다. 보행자는 순간 운전자를 향해 '나쁜 놈' '양심도 없는 놈'이라며 그의 본성을 탓한다. 그런데 보행자였던 사람이 운전자가 되고, 본인이 주행 중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면 반응이 달라진다. "제가 원래 운전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정말 급한 회의가 있어서..."라며 상황을 탓하는 것이다.

 학습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시험을 잘 지르지 못했을 경우 부모가 나서 먼저 핑계를 찾아주곤 한다. "오늘은 네가 컨디션이 안 좋았잖아" "이번에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했구나"라는 식이다. 이때 핑계가 아닌 방법을 찾으면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시험을 못 봤구나.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시간을 나눠서 학습을 해야 할까?"라고 물으며 아이와 함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아이의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학원 선생님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저번 학원 선생님은 공부를 너무 안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학원을 옮겼어요"라고 이야기하는 부모가 많다. 사실 선생님은 정보 전달자에 불과하다. 학습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거꾸로 생각하면 아이가 아닌 선생님에게 집중하게 된다. 학습은 분명 아이가 해야 하는 것인데 선생님이 해결해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 아이는 애초부터 공부와 거리가 먼 아이'라며 자포자기하는 부모도 있다.

 한국처럼 남과의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기본적 귀인 오류가 더욱 심할 것이다. 학습의 본래 의미를 놓치는 이러한 흐름이 나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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